바벨 이후 no.1
- 작품 정보
- 2026 · 720 × 240 cm리넨에 유채, 광물 안료
무너진 탑의 잔해 위로 사람들이 다시 도시를 짓는다. 화면의 중심에는 거대한 공백이 있고, 건축물은 그 빈자리를 둘러싸며 증식한다. 멀리서는 하나의 기념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계단과 시장, 공동 부엌과 작업장이 나타난다. 도시는 정상에 도달하는 대신 서로의 생활을 떠받치는 방향으로 자란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실
무너진 탑의 잔해 위로 사람들이 다시 도시를 짓는다. 화면의 중심에는 거대한 공백이 있고, 건축물은 그 빈자리를 둘러싸며 증식한다. 멀리서는 하나의 기념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계단과 시장, 공동 부엌과 작업장이 나타난다. 도시는 정상에 도달하는 대신 서로의 생활을 떠받치는 방향으로 자란다.
위층의 넓고 고요한 홀 아래로 작은 방과 작업장이 촘촘히 쌓인다. 건축의 무게는 기둥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한 사람이 벽의 균열을 메운다. 거대한 공간의 평온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작은 손에 맡겨져 있는지 드러난다.
건너가기 위해 놓은 길 위에 사람들이 머물렀다. 집과 시장, 식탁이 이어지며 다리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아치 위에서 서로 다른 집들은 벽을 공유하고, 오래된 길은 매일의 생활을 지탱한다.
떠나는 배와 돌아오는 배가 같은 수로를 지난다. 부두에는 짐을 나르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도착했지만 내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화물과 밧줄의 흐름 사이로 작은 정지들이 놓인다. 누구의 도착도 작품 전체의 결말이 되지 않는다.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본 광장 위로 천막과 물건들이 촘촘한 색면을 이룬다. 골목마다 거래와 식사, 노동과 휴식이 서로 다른 속도로 이어진다. 붐비는 시장 한복판의 비어 있는 좌판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수많은 교환 속에서 그 자리의 주인만 보이지 않는다.
짙은 녹색 수면 위로 건물의 일부가 드러난다. 얕은 물 아래에는 계단과 문턱,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빛에 흔들리는 반사와 가라앉은 구조가 한 화면에서 겹친다. 길을 잃은 뒤에도 집의 형태는 누군가가 살았던 자리를 기억한다.
어두워지는 도시의 외벽 사이로 작은 창들이 켜진다. 식사와 노동, 간병과 고독이 각각 다른 빛의 깊이로 나타난다. 같은 저녁을 맞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창문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 도시는 풍경에서 생활로 바뀐다.
작은 방 안에 침대와 빈 의자, 열린 문이 놓여 있다. 문 너머의 중정과 계단, 창문을 따라가면 멀리 도시가 이어진다. 가장 적은 것을 담은 방이 가장 먼 곳까지 시선을 보낸다. 바깥의 거대한 세계는 이 조용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대륙처럼 보였던 윤곽이 도시의 벽으로, 도시는 건물의 내부로, 내부는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로 이어진다. 가장 깊숙한 방에는 지도 앞에 앉은 인물이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이 바깥의 세계인지, 바깥의 세계가 그를 포함한 지도인지 끝내 구분되지 않는다.
멀리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는 하나의 윤곽이 되고, 사람들은 풍경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질서는 서로 다른 시간과 사정으로 흩어진다.
마르흐리트 판딥은 건축의 크기와 생활의 크기를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거대한 벽을 지탱하는 작은 방들, 광장을 가로지르는 한 사람, 지도에 남지 않는 기다림. 그의 그림을 보는 일은 전체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전체라는 말 속에서 빠져나간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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